꿈, 희망, 용기를 갖고 살아라
(히 11:1~6)

할렐루야~ 저런 장면을 보면은 우리 빨리 돈 벌어야 돼요. 참된 경건이 무엇이냐, 과부와 고아를 그 환난에서 건져주는 것이 참된 경건입니다. 기도굴에 들어앉아서 365일 주여, 주여.... 그렇게 한다고 그 사람이 경건한 사람 아닙니다. 책임 회피하는 사람입니다. 현장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도와줘야지요. 그래서 사랑과 행복을 나눠야지요. 그것이 참된 신앙이고 참된 경건입니다. 다른 많은 이론이 필요 없어요. 오늘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 믿음으로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일을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꿈, 희망, 용기를 갖고 살아라”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꿈, 희망, 용기를 갖고 살아라! 제가 이 제목을 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 “나는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살아난 사람입니다. 왜냐, 목사님의 설교는 언제나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어서 절망에서 소망을 패배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게 해주시니 꿈과 소망의 목사입니다.” 그 글을 읽자 제가 ‘바로 봤다! 당신 나를 바로봤다. 내가 50년 동안 살아온 목표가 목회한 목표가 성도들에게 또 일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한 사역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꿈과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분을 저는 알기 때문에 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인생이 살면은 살아가는 의미가 있어야 돼요. 여러분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교육을 못받은 사람이라도 살아가는데 살아가는 의미가 있어야 돼요. 살아갈 의미가 없으면 힘과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죄수들에게 내리는 형벌. 한가지 일을 계속 반복하도록 하는 형벌입니다. 물통 두 개를 갖다놓고 이 물통 여기에 붓고 또 이 물통 그 자리에 또 붓고... 이것을 1년 365일 계속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덩이 파는 것입니다. 여기에 구덩이를 하나 파놓고 그 다음 그것을 도로 매꿔 놓고 또 도로 파고 또 도로 매꿔 놓고 꿈도 희망도 용기도 가질 수 없는 좌절과 고통을 주는 것이 바로 그 형벌인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잃어버리면 살아갈 의욕을 상실하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인생의 목적을 찾아 담대히 나아가야 삶의 행복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바꾼 위대한 인물들은 남보다 지식이 많거나 돈이 많거나 권력이 많아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남이 갖지 않은 분명한 꿈을 가졌고 마음을 흥분케 하는 희망을 가졌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 이런 사람은 남들보다 지식이 많지도 않고 돈도 많지도 않고 권력도 없어도 운명과 환경과 역사를 바꿔 놓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는 다른 사람처럼 좋은 대학을 나오고 학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아무것도 못한다. 나는 돈이 없으니 빈손 들고 뭘 하겠는가? 권력이 없으니 아무것도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계를 바꿔 놓은 사람들은 꿈과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서 했지 학식이나 돈이나 권력을 가지고서 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크던지 작던지 꿈과 희망과 용기만 가지면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의 사랑이 꿈을 심어준다
첫째로, 어디에서 우리가 꿈을 얻을 수 있냐 하면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찾아와서 좌절한 우리들에게 꿈을 심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절망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퍼부어 주어서 꿈이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죄 덩어리인 나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셔서 갈보리 산에서 대속 제물로 삼으신 그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오면은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고 우리 마음 속에 꿈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다 사랑했다 하는데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나님이 보좌를 떠나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된 이처럼 얼마나 우리 사랑했습니까? 이처럼 너희와 함께 먹고 자고 깨고 그러면서 너희 모든 인생의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을 대신 짊어진 이처럼 사랑했다. 사랑은 그러므로 명사가 아닙니다. 동사입니다.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느냐 안하느냐 증명하라 증명 않하라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은 이미 우리가 죄인 되어 처참한 상황에 있을 때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청산해 주셨기 때문에 그 이상 더 무엇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우리는 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로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어찌하든지 살리려고 한다. 그게 하나님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가 하나님 언제 사랑했나요? 우리는 하나님 사랑하지 않고 멀리멀리 떠난 우리들을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찾아서 붙잡아서 우리 죄를 대신 청산하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옷 입혀 주신 것입니다. 하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포기하거나 버렸다면 여러분과 나는 벌써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로 16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야~ 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이 구절이 있는 것을 몰랐지요? 젖먹는 어린 자식을 여인이 못잊는 것은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 여인이 없는 것처럼 그러나 그 중에도 그 젖먹는 자식을 잊어 버리거나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사람하고 다르다. 나는 안그런다. 나는 끝까지 잊지 않는다. 못되게 굴어도 끝까지 잊지 않고 그를 건져 새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신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겨 놓았다. 밤낮 내 손바닥 보는데 새겨 놓은 그 이름 안볼수가 있나요?
히브리서 13장 5절에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결코라고 말했으니까 뭐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거나 떠나지 아니하는 한도 내에서는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버리거나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는 이상은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우리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죽을 때까지 돌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8절로 39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어마어마하게 사랑하십니다. 참 우리 행복하고 다양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 우리 일을 그렇게 사랑해 돌보아 주시므로 열매 맺는 인생을 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의미하게 쓰레기 같은 인생 아닌 열매를 맺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를 만들어 주시겠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면 이상적인 자기의 미래를 꿈꿀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꾀 잘생겼구나.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좋아하시고 이렇게 돌보시니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고 꿈을 꿀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내일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일은 어떤 분이냐. 여러분 마음 속에 꿈을 꾸는 그 사람이 내일이 되는 것입니다. 가슴 속에 자기 사진을 걸어놓아 그 사진과 같은 여러분이 내일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가득한 것이 내일 나타납니다. 마음에 아무것도 없으면 내일에 허무맹랑한 것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허깨비만 나타나요. 그러므로 우리 가슴 속에 내일에 대한 찬란한 꿈을 그려야 되겠는데 가슴을 흥분케 하는 꿈을 가져야 되겠는데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고 붙들어 주는 하나님이 안계시면 내가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나를 천대히 여기는 처지에 있는 내가 꿈을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무시하고 천대하고 멸시하더라도 하나님 처다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하나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와 같이 한다. 내가 결코 너를 버리지 않고 결코 너를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너를 열매 맺기를 원한다. 그러면 여러분 붓을 들고 먹에다가 붓을 찍어서 서투른 그림이라도 그려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내일 내가 어떠한 인생이 되겠다는 그림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림 가지고 있지요?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오시는 분중에 마음 속에 자기에 대한 그림을 그려서 가슴 속에 그려놓고 매일같이 보지 않는 사람은 낙제생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노트에 여러분이 미래 되기를 원하는 여러분의 자화상을 글로써 적으신 분 한번 손들어봐 주십시오. 이 보십시오. 이 많은 사람 중에 이것밖에 없다고... 여러분의 그림을 여러분이 안적으면 누가 적어줍니까? 내가 대신 적어줄까요? 저는 하루에 한번씩은 꼭 적습니다. 꼭 적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당사자가 내 자신에 대해서 매일 적습니다. 왜, 과거를 돌아볼 때 내가 과거에 가슴 속에 그려놓고 매일 적고 바라보는 것이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된 것입니다. 오늘 내 가슴 속에 그려놓고 바라보고 늘 적는 그 그림이 내일의 나의 생명이 될 것인 것입니다. 안그러면 내일 나이 80, 90이 되어서 구부정해서 걸음을 잘 못 걷고... 이렇게 되면 절단강산이 나는 것입니다. 절단강산... 내일이 다가와도 나는 90이 되어도 40대, 50대 같이 활달하게 산다. 우리 성가대장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면 이상적인 자기 미래를 꿈 꿀 수가 있습니다. 최고의 이상적인 자기를 마음에 꿈꾸는 사람은 최고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8절에 보면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열매 맺고 우리 주님께서 도와주셔서 아버지에게 여러분이 무엇을 구하든지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 평론하지 말게 하십시오. 여러분 가슴 속에 열매맺을 수 있는 꿈을 주님께 기도하여 받으십시오. 주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보호해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꿈과 희망을 심어주니까 여러분 꿈과 희망을 안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합니다. 제가 시 한편을 읽어 드릴 테니까 여러분 가슴 문을 열고 한번 들어 보십시오.
“열 번 백 번 죽어도 싼 죄인인데 주님께선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세상은 법을 어겼으니 법대로, 죽으라 했는데 주님께선 저보고 다시 살라 하십니다.
아픔과 슬픔만 드렸는데 다시 한번 시작해 보라고 생명의 문 열어주셨습니다.
이 은혜 어찌 갚아야 하나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나요 가진 것 없어 드릴 것이 없는데
덤으로 주신 삶 이제 나를 죽이며 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만을 사랑하며 살렵니다.”
이 시는 사형수였다가 예수님을 믿고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전도하기 시작한 김진태 씨의 시입니다. 그는 1992년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이었는데, 한 목사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영원히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사형 집행만을 기다리던 그는 이 기쁜 소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어떻게 변화되었느냐. 며칠 후, 그는 사형장에서 자신이 매달려야 할 밧줄이 예수님의 목을 묶어서 하늘로 달려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의 혹사리에 자기의 사형밧줄에 예수님이 달려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는 그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나서 무릎을 꿇고 독방에서 사흘 밤낮을‘엉엉엉..’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아버지를 죽인 죄인입니다.” 친아버지를 죽였어요.“저는 아버지 살해한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나 같은 하찮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 죄인의 죄를 예수님이 짊어진 것을 보고 그는 완전히 변화되어 언제나 주님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을 주위 교도관과 재소자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전도한 재소자가 10년 동안에 600여 명이 되었습니다.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

바로 이 김진태가 바로 여러분과 나 아닙니까? 우리가 다 사형 언도를 받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데 우리 대신 죽으려고 예수님이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인간으로 사시고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서 우리 죄를 청산하시고 우리 불의와 추악을 청산하시고 우리 질병을 다 갚으시고 우리의 저주를 청산하시고 사망과 음부를 다 멸하시고 우리에게 용서와 의의 은혜를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은혜를 치료와 건강의 은혜를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의 은혜를 부활 영생천국의 은혜를 주셔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는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 속에 모시고 변화가 되고 꿈을 못가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지난 2002년 12월 31일 이 김진태씨를 교도소 안에서 선행과 주위 사람들의 탄원에 힘입어 사형수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도록 도와주셨고 그는 ‘담 안의 전도자’로써 지금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좋은 열매 맺을 것을 끝까지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면 죽음에서 건짐 받고 놀라운 우리의 미래를 꿈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해 주셨는데 내일 꿈 안꿀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에 의해서 내 마음 속에 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인생의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을 끝까지 기대하십니다. 사람들은 다 우리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내 자신조차도 나에 대한 기대를 버려도 하나님은 기대를 버리지 않습니다. 기어코 가치있는 좋은 열매 맺게 될 것을 하나님이 기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우리는 미래를 꿈꿀 수가 있습니다.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진짜로 꿈을 꿀 수가 있어요. 여러분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한다고 했는데 다 꿈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령님과 소망
둘째로,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운행하시면 새로운 삶과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좋은 곳에 오시지 않아요.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성령은 그곳에 새로운 질서와 생명과 아름다움을 갖다주기 위해서 와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휴 우리집이 이렇게 시끄럽고 요란스러운데 성령 오시겠냐. 요란스러운 집을 택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내 가슴 속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절망하고 좌절하는데 하나님 성령이 오시겠느냐. 바로 그런 자리에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어두움에 빛을 무질서에 질서를 죽음에 생명을 패배에 승리를 가지고 오는 영이시기 때문에 그런 곳에 성령님이 나타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절로 3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그러니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궁창이 생겨나고 바다와 땅과 식물이 생겨 나고 해와 달과 별들이 생겨나고 새와 물고기와 동물과 사람이 생겨나고 천지가 새롭게 변화되어 버리고 만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런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신 것은 새로운 삶과 세계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는 흉악한 세상을 누가 변화시키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좋은 날이 온다. 기다려라!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래서 성령께서 운행하시고 역사하는 곳에 교회가 서고 성도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고 질서가 생겨나고 아름다운 삶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북한이 변화되는 것도 성령의 역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전도하면 복음이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 그 무엇도 북한을 완전히 변화 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가서 성령바람이 불면은 안 변화 될 수가 없어요. 성령과 싸울 수가 있습니까? 못싸웁니다. 성령은 눈에 안보이잖아요. 눈에 안보이지만 성령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 되는 것이거든. 오늘날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도 바로 냄새도 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손에 잡히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지혜인 성령께서 불어가면 성령 바람을 어떻게 막을수가 있어요? 두손으로 막습니까? 병풍으로 막습니까? 못 막아요. 성령 바람 불어가면 성령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를 완전히 바꿔 놓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운행하시면 운행하는 그곳에 교회가 서게 되고 성도들이 모이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은 굉장한 존재인 것은 여러분 속에 성령이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 별볼일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스스로가 별볼일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셔서 성령의 전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지 안부르시는지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야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을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나님의 성령이 이것을 알게 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여러분 고백할 수 있으면 한번 손들어 봐 주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러면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계시고 여러분이 예수님 속에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압니까 주님이? “바요나 시몬아 내가 네게 천국 열쇠를 주노니 내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 여러분, 천국의 열쇠입니다. 천국이 좋습니까? 안좋습니까? 우리가 다 천당갔다고 천국갔다고 그 열쇠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에게 주님이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천국 열쇠를 주노니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 땅에서 여러분 어떻게 매고 풉니까? 말로써 묶고 말로써 푸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열쇠를 주노니 열쇠 여러분 다 가지고 있어요. 하늘나라 문을 땅에서 열면 하늘에서 열리고 땅에서 닫으면 하늘에서 닫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곳곳에 천국 문을 열어 놓을 수도 있고 천국문을 닫아 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열어놓고 살아야지요. 마음 속에 성령이 계시면 성령은 여러분 피할 수 없이 여러분들에게 꿈과 환상을 줍니다. 더 나은 꿈, 더 나은 환상. 꿈과 환상이라는 것은 희망을 주는 것이지 희망없는 꿈과 환상이 무슨 필요 합니까? 더 나은 꿈과 환상을 성령은 꼭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로 18절에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예언이란 내일에 대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일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합니까? 환상과 꿈을 보여 주겠다. 즐거운 환상과 꿈, 희망을 주는 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꿈과 환상을 주세요. 그리고 내일에 대한 이해력을 마음 속에 허락해 주세요. 그러므로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꿈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환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꿈과 환상이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왜냐,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성령이 여러분 속에 계시는데 그 성령이 바로 여러분에게 꿈과 환상을 주는 하나님의 영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시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희망적인 꿈, 희망적인 환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여러분 스스로가 결정하지 말고 여러분 속에 계신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 성령께서 여러분께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여러분 내일 장래일을 여러분에게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성령이 오시면 성령은 소망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더 나아지는 소망으로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소망으로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소망의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3. 말씀에 대한 믿음이 용기를 준다
셋째로, 말씀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우리는 갖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떠는데 어떻게 합니까? 믿음이 있어야 용감하게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을 우리가 믿어야 마음에 담대함을 얻을수 있지 다른 것 믿어서 어떻게 담대합니까?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우리가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요.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으니 믿을 수가 없을 때가 많지요. 성경의 말씀은 우리가 믿으면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주님은 빈손들고 우리를 내보내지 않습니다. 상주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상주세요. 여러분 상받는 것 다 좋은일 아닙니까?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상받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성령은 우리에게 상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기만 하면 상주시지요.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말씀을 안읽고 말씀을 안듣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믿음을 생산하는 씨앗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믿음이 생겨나요. 설교를 들으면 믿음이 생겨나요. 왜, 믿음의 씨앗을 심었는데 믿음이 안 태어날 수가 있나요? 그런데 우리가 마음에 믿음이 생기면 믿음이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이기게 합니다. 불안과 공포가 안생수가 없지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데 어디가도 불안이 있고 공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늘 병도 듭니다. 병을 늘 이겨나가는 것이지요. 가난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도 늘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 믿음으로 운명과 환경을 이기고 나간다. 그래서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0)
그게 모두 다 극복하는 것을 말하지 안 당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항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납니다. 인생에 밤이 다가오지만 우리는 우리 속에 밤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큰 믿음이 들어와 있으므로 기도하고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므로 믿음이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새로운 생각과 꿈을 갖고 실천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요. 겁을 집어먹고...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어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우리가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그것이 담대하게 꿈을 실천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새로운 기적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생을 살리는 꿈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과 친해지면 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어 담대하게 되어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새로운 생각과 꿈을 품고 이를 위해 열정을 다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새로운 세계를 지을 수 있는 꿈과 희망과 용기를 수용할 수 있는 보고인 것입니다.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용기만 있으면 새로운 세계를 마음 속에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꿈과 희망을 가지고 그 다음에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용기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볼 때 모든 보배와 함께 임하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사랑도 희망도 믿음도 모두다 갈보리 십자가의 열매로 나타난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린 예수님을 바라볼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나고 그 안에서 성령이 폭포와 같이 임하여서 여러분에게 꿈과 희망으로 채워 주시고 그 안에서 믿음이 넘쳐나서 용기와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명예가 없어도 그런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서 내려다 보시면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악을 다 청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폭포와 같이 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꿈을 안가질래야 안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꿈을 갖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십자가를 통해서 넘쳐나는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성령이 넘치게 와서 꿈과 환상으로 우리 속에 채워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의 말씀이 십자가에서 넘쳐나서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조용기 목사 설교 (2011년 1월30일)